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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저온 핵융합, 다시 불붙은 불가능의 과학 – 실험실에서 태양의 힘을 꺼내려는 인간의 도전

by 소인트 2025.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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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 학계에서 다시금 ‘저온 핵융합(Low-Temperature Nuclear Fusion)’이 주목받고 있다.
수십 년 전 ‘가짜 과학’으로 치부되었던 이 분야가, 인공지능 시뮬레이션과 양자역학 해석 기술의 발전 덕분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태양의 원리를 ‘낮은 온도’에서 구현하려는 시도

핵융합은 태양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원리다. 두 개의 수소 원자핵이 높은 압력과 온도 속에서 융합되어 헬륨으로 변할 때, 질량 손실에 따른 막대한 에너지가 방출된다.
문제는 그 온도와 압력이다. 지구상에서 이 반응을 인공적으로 구현하려면 1억 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현재의 고온 핵융합 실험(예: 토카막, 스텔라레이터)은 바로 이 조건을 달성하기 위한 시도다.

반면, 저온 핵융합은 이러한 극단적 조건을 피하려는 접근이다.
금속 수소화물, 전기화학 반응, 또는 양자 터널링 효과를 활용하여 훨씬 낮은 온도에서 핵융합 반응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수천 도 이하에서도 반응이 가능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상온 핵융합’의 논란에서 ‘저온 핵융합’의 재평가로

1989년, 미국 유타대의 화학자 마틴 플라이슈만(Martin Fleischmann)과 스탠리 폰스(Stanley Pons)는 ‘상온(室溫) 핵융합’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후 실험 재현에 실패하면서 그 주장은 곧 과학계에서 철저히 배척되었다.
당시의 데이터는 ‘화학 반응의 부산물’로 설명될 수 있다는 반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연구자들은 그 실험에서 관측된 미세한 **비정상적 열(Excess Heat)**이 단순한 화학 반응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최근에는 나노소재 기술과 정밀 열측정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 현상을 다시 검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저온 핵융합’이라는 명칭은 바로 이러한 현대적 재해석의 연장선에 있다.


왜 지금, 다시 주목받는가

첫째,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의 시대적 요구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존 화석연료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고온 핵융합은 유망하지만, 상용화까지는 여전히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비해 저온 핵융합은 소형화와 저비용의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연구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둘째, AI 기반 시뮬레이션의 발전이 이론적 가능성을 열고 있다.
MIT, 도쿄공대,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핵반응 조건 탐색 연구가 활발하다.
기존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에너지 장벽이, 실제로는 특정 양자 조건에서 극복될 수 있다는 계산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셋째, 우주·국방 분야의 실용적 관심이다.
미국 DARPA(국방고등연구계획국)와 NASA는 소형 핵융합 에너지를 활용한 우주 전력 시스템 연구를 병행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위성, 탐사선, 군용 장비 등에 적용 가능한 ‘마이크로 핵융합 전지(Micro Fusion Cell)’로 발전할 가능성이 제시된다.


과학계의 시선은 여전히 냉정하다

물론, 주류 물리학계는 여전히 저온 핵융합을 실험적 가능성의 수준으로만 본다.
서울대의 한 물리학자는 “저온 핵융합이 실제로 확인된다면, 이는 현대 물리학의 근본을 바꿀 사건이 될 것”이라며 “지금까지 보고된 대부분의 데이터는 금속의 전자 구조 변화나 열화학 반응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연구에서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잉여 열 발생이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아직 규명되지 않은 미세 핵반응의 단서’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학계 일각은 연구 지속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일본, 이탈리아, 한국 등에서는 정부 지원 하에 소규모 파일럿 연구가 진행 중이다.


‘불가능과 가능의 경계’에 선 기술

저온 핵융합은 아직까지 검증된 기술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의 역사는 언제나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것들이 가능해지는 과정”이었다.
20세기 초 비행기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시절이 있었고, 반세기 전만 해도 인공위성은 꿈에 불과했다.

저온 핵융합 연구가 결국 또 하나의 실패로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물리학적 데이터와 새로운 접근 방식은, 결과적으로 인류의 에너지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자극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다루는 것은 단순한 금속 전극이 아니다.
그들은 ‘태양의 불씨’를 인간의 손으로 길들이려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꿈을 다시 점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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